지난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의 불안했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표팀은 각성하지 않았다. 리그의 수퍼스타들에게 대표팀이란 나라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영광보다는 여름 휴식기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함은 물론 부상의 위험까지 가져올 수 있는 골치거리가 되어갔다. 대표팀에 차출된 이 후 시즌에 임했던 선수들이 체력적인 부담을 토로했고, 몇 몇 부진했던 선수들이 부진의 이유로 대표팀 승선에 의한 체력부담을 지적받으면서 대표팀 기피 현상의 정도는 더해져갔다. 게다가, 더 이상 드림팀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꿈의 팀'이 아니었다. 결국 부상, 가족 등의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수많은 NBA 의 스타들이 대표팀 승선을 거절했다. 그들의 로스터를 살펴보자.
도대체 이 팀의 어디가 세계 최강의 드림팀이란 말인가...
'농구종가', '세계최강'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표팀이라기엔 그 기량 자체도 한참 함량 미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팀이었다. 게다가 2000년 올림픽에서 서서히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원조 드림팀 이 후 최초의 대학생 선수들 선발하는 과감함까지 보여줬다. (물론 본선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함량미달이었던 것은 물론 팀원의 구성 자체도 굉장히 엉망진창인 팀이었다. 그나마 팀 내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선수였던 저메인 오닐의 본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였고 라예프 라프렌츠는 '3점슛이 가능한 센터' 였을뿐 미국의 골밑을 지켜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효과적인 조합이란 찾아볼 수 없는 라인업이었다. 게다가 상대팀들은 더 이상 미국 대표팀을 겁내지 않았다. 그들의 경기결과를 살펴보자. USA 110 : Algeria 60 (+50)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허가되기 이전은 물론, NBA 의 직장폐쇄로 인해 CBA 선수들과 대학생들을 위주로 만들어졌던 1998년의 대표팀도 이렇게 참담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미국으로부터 농구라는 운동이 세상에 알려진 이래 가장 처참한 성적을 거둔 미국 대표팀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그들은 드림팀 결성 이 후 최초의 패배를 기록했음은 물론, 그 이 후 곧바로 최초의 연패를 기록하는 치욕을 당했다. 숫자로 기록되어 있는 패배는 물론, 경기의 내용조차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다음은 그들의 스탯이다.
드림팀 역사상 최초로 필드골 성공률이 5할에 미치지 못했으며, 상대팀보다도 10% 이상 낮은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드림팀의 달콤한 꿈이 드디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자국에서 열렸던 대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꿈은 끝났다...
아르헨티나, 스페인 대표팀에게 연거푸 패배를 당하며 드림팀 최초의 "LOSE" 를 기록했다.
독일의 덕 노비츠키(중앙)와 경합 중인 엘튼 브랜드(좌), 벤 월라스(우) NBA 의 스타 플레이어 멤버는 더 이상 미국 대표팀만의 자랑이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Dream" 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줬던 폴 피어스. 빅 벤이 위대한 선수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드림팀에 승선할 만한 선수인가에 대해서는... '스포츠 > 농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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