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선수은퇴과정에서 당시 소속팀감독인 차범근과 마찰있었다는 루머가 있다 사실인가?

 

A: 마찰이 있었다.어떻게보면 축구관의 차이였다.지금은 차감독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조금 독선적이었다. 자신이 비행기를타지않는다고 모두 울산에서 기차를타고 다녔는데 국방색바지에 하얀색아디다스 면티를 입고 공을들고 열맞춰서 기차를탔다. 그리고 내가 19세 선수들과 같이 뛰어도 뒤지지 않았는데 운동을 너무 많이 시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일이생겼다. 당시 주중 수요일에는 아디다스컵 경기를 하고 토요일에 리그경기를 치렀는데, 포항전을 앞두고 선발명단에서 나를 뺏다. 10년동안의 프로팀생활과 국가대표팀 생활에서 베스트멤버가 아닌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입장에서는 '내가 고참이니까 감독이 언질이라도 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가기는 했다. 그런데 그다음날 훈련을 하는데 나에게 "게임을 안 보냈더니 최선을 다 안한다."면서 운동장을 돌라고 했다. 그대로 택시타고 집에갈까 하다가 운동장을 돌았다. 그런데 차감독이 후배들에게"나이먹고 감독이 경기 안보낸다고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마디 했다. 그래서 나는"불만을 표시한적도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 선입견이 아니냐"고 따졌고, 차감독은 "너 알고 보니까 나쁜놈이구나"라고 말했다. 결국"나는 나쁜놈이고 축구그만 하겠다"고 말하곤 돌아서버렸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1991년에 나는 5골4도움을 기록하면서 최우수 수비상을 받았다. 그런데 연봉계약을 앞두고 12월30일까지 나를 부르지 않더라, 31일에 단장이 불러서 갔더니만 이미 액수가 적힌목록을 보여주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단장님 이거는 아니다. 연봉계약은 선수의 마지막 권리이고 자존심인데 액수를 정해놓고 사인을 하라고 하면 안된다.누가 액수를 정했나?"라고 물어보니 차감독이 정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일괄적으로 연봉을 30%인상한거였다.그래서 난 계약을 안하고 나왔고 그러고나서 울산에 안내려갔다.

 

사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다만 생각의 차이인것이다. 차감독이 봤을때는 내가 최선을 다한것이 아니었고,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훈련한것이다. 하지만 판이 깨진건 확실히 연봉계약에서 였다.

출처: 포포투


일설에 의하면 선수시절의 최강희와 차범근간의 좋지않은 기억 때문에 최강희 현 국대감독이 차두리를 국대로 발탁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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