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제일 창의적이었던 일들을 꼽으려고 회고해 보면, 그것들이 모두 어느 한 시절, 가장 많은 제약조건과 잡무로 치이고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예를 들어 1967년이 되겠는데, 그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던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내 연구중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결과들이 샘솟았던 행운의 해이기도 하다. 속성 문법 (attribute grammar), 크누스-벤딕스 완성 (Knuth-bendix completion), LL(k)파싱 (LL(k) parsing) 등이 모두 그 해에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사실 그 해에 나는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쓰고있던 책(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이 곧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고, 태어난 애기 둘을 아내와 함께 돌봐야 했고, 잠깐 입원까지 하기도 했었고, Caltech에서의 강의 이외에 외국의 다섯 나라에서 다섯가지 다른 주제로 강연하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연구 시간을 쪼개내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학회에 참가해서는 대부분의 논문발표 세션을 빼먹고 해변에 가앉아서 내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종종 의문이인다, 내가 그 해에 보다 더 안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연구가 과연 더 생산적이었을까 덜 생산적이었을까?

이러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연구소를 제일 잘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진들에게 좋은 연구실말고 다락방같은 형편없는 곳에서 지내도록 하고, 심하게는 연구와 관련없는 일들까지 시키는 것이다. 이상한 방식이긴 하겠지만, 그러한 제약조건을 만들어 놓으면 최대의 창의력이 솟아나는 것이 사실인것 같다.


- Donald E. Knuth, [Things A Computer Scientist Rarely Talks About], CSLI Publications, 2001, p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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