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Guard | 포가 http://blog.naver.com/rap1324/60053639321 4. Grotesque - Dream Team 4 (2000' Sydney Olympic)
많은 분들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 후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이 전승가도를 달렸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미 1998년에 있었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의 패배를 기록했던 미국 대표팀이다. 물론, NBA 리거들이 당한 패배는 아니었다. 당시 직장폐쇄로 인해 NBA 선수들을 참가시킬 수 없었던 미국 대표팀은 CBA 와 대학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렸고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에게 두 차례 패배를 당한 끝에 대회 3위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할 미국 농구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개인적으로 '드림팀'이라는 호칭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과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에게만 붙였으면 한다. 가히 그로테스크한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드림팀 역사상 최초로 7풋 선수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라인업이다. 반면 백코트는 굉장히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아직도 언급되지 않은 포지션인 스몰 포워드. 이토록 엽기적인 라인업을 자랑하던 드림팀4의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USA 119 : China 72 (+47) 이제는 80점대 득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골밑에서의 높이와 파워 부재는 드림팀 특유의 강렬했던 색채를 옅게 만들었다. 세계의 강호들은 서서히 드림팀을 '꿈의 팀'이 아닌 '꺾을 수 있는 팀'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토록 그로테스크한 라인업을 자랑하며 위태위태하게 보였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살린 것은 빈스 카터였다. 대회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불만족스러움들을 한 방에 잊게해줬던,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프레드릭 와이스를 뛰어넘어 작렬시킨 덩크는 "역시 드림팀!" 이라는 찬사를 한 번에 되돌려 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그로테스크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이었다. 다음은 2000' Sydney Olympic Team 의 스탯이다.
원조 드림팀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공격시도 횟수와 겨우 50%를 넘길 수 있었던 역대 최악의 필드골 성공률. 드림팀 결성 이 후 경기당 두 자릿수의 스틸을 기록하지 못한 최초의 팀이었으며 가드진의 화려함을 언급했지만, 외곽슛 시도조차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아주 조금씩... 'Dream' 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이 때부터 였다.
팀을 둘러싼 의심의 시선들을 단 한 방으로 잠재웠던 카터의 덩크
가넷의 승리를 향한 열정은 대표팀에서도 어김없이 불타올랐다.
팀 하더웨이
제이슨 키드
게리 페이튼
팀 내 유일한 정통센터였던 알론조 모닝, 미래 NBA 의 스타가 될 야오 밍과 경합중이다.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전승 행진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스포츠 > 농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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