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Point Guard | 포가
원본 http://blog.naver.com/rap1324/60053639321


4. Grotesque - Dream Team 4 (2000' Sydney Olym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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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 후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이 전승가도를 달렸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미 1998년에 있었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의 패배를 기록했던 미국 대표팀이다.

물론, NBA 리거들이 당한 패배는 아니었다.

당시 직장폐쇄로 인해 NBA 선수들을 참가시킬 수 없었던 미국 대표팀은 CBA 와 대학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렸고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에게 두 차례 패배를 당한 끝에 대회 3위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할 미국 농구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었다.
1998년 서울 올림픽에서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국제 대회에서 정상의 자리를 놓친 뒤에 등장할 드림팀이었기에, 그들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20세기 최후의 올림픽에 참전할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로스터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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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드림팀'이라는 호칭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과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에게만 붙였으면 한다.
좀 더 양보해서, 시기적으로 두 팀의 사이에 결성되었던 1994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대표팀까지 허락한다고 해도, 이번 대표팀부터는 쉽사리 Dream 이라는 단어를 허락하기 힘들어보인다.

가히 그로테스크한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드림팀 역사상 최초로 7풋 선수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라인업이다.
앞서 결성되었던 드림팀들 중 최악의 높이와 골밑 파워를 자랑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일한 정통센터인 알론조 모닝은,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던 가넷보다도 작은 선수였고
그나마 정통 파워 포워드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은 베이커와 맥다이스 뿐이었다.

반면 백코트는 굉장히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페이튼-키드-티미 로 이어지는 포인트 가드진은 불가능이 없는 라인업이었으며
카터-앨런-스미스-휴스턴 으로 이어지는 슈팅 가드진은 화려함과 정교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아직도 언급되지 않은 포지션인 스몰 포워드.
그렇다. 이 팀에는 단 한 명의 스몰 포워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토록 엽기적인 라인업을 자랑하던 드림팀4의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USA 119 : China 72 (+47)
USA  93  : Italy 61 (+32)
USA  85  : Lithuania  76 (+9)
USA 102 : New Zealand 56 (+46)
USA 106 : France  94 (+12)
USA  85  : Russia  70 (+15)
USA  85  : Lithuania 83 (+2)
USA  85  : France  75 (+10)

이제는 80점대 득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그들은 최초로 한 자릿수 점수 차이의 승리를 거둔 드림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특히 리투아니아와의 경기에서는 단 한 골차이, 2점차로 박빙의 승리를 기록하는 등
서서히 'Dream' 이라는 이미지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골밑에서의 높이와 파워 부재는 드림팀 특유의 강렬했던 색채를 옅게 만들었다.
화려하게 보였던 백코트 역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세계의 강호들은 서서히 드림팀을 '꿈의 팀'이 아닌 '꺾을 수 있는 팀'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토록 그로테스크한 라인업을 자랑하며 위태위태하게 보였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살린 것은 빈스 카터였다.

대회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불만족스러움들을 한 방에 잊게해줬던,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프레드릭 와이스를 뛰어넘어 작렬시킨 덩크는 "역시 드림팀!" 이라는 찬사를 한 번에 되돌려 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그로테스크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이었다.

다음은 2000' Sydney Olympic Team 의 스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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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드림팀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공격시도 횟수와 겨우 50%를 넘길 수 있었던 역대 최악의 필드골 성공률.
'수비성공 -> 속공 마무리' 의 근간이 될 수 있었던 스틸은 이전 대표팀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드림팀 결성 이 후 경기당 두 자릿수의 스틸을 기록하지 못한 최초의 팀이었으며
최초로 평균득점이 100점 아래로 떨어진 팀이기도 했다.

가드진의 화려함을 언급했지만, 외곽슛 시도조차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아주 조금씩... 'Dream' 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이 때부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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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둘러싼 의심의 시선들을 단 한 방으로 잠재웠던 카터의 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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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의 승리를 향한 열정은 대표팀에서도 어김없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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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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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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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페이튼

비록 어딘지 부족해보였던 팀이었지만, 포인트 가드 진영만큼은 드림팀이라는 타이틀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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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내 유일한 정통센터였던 알론조 모닝, 미래 NBA 의 스타가 될 야오 밍과 경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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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전승 행진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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