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라운드록 익스프레스)는 오마하 로열스전에 선발 등판해 6과3분의 2이닝 동안 홈런 3개 등 안타 9개(3볼넷)를 맞고 6실점해 패전투수(2대8)가 됐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4)가 악전고투 중이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뛰어든 지 14년째. 어느새 ‘코리안특급’이란 별명이 생경하게 들린다. 박찬호 본인이 원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올 시즌 뉴욕 메츠에서 방출될 만큼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현재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 A팀인 라운드록 익스프레스에서 선발로 뛰고 있는 그의 올 시즌 성적은 5승7패 평균자책 5.38.

최근엔 고전하고 있지만 박찬호는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13승을 올린 대(大)투수다. 2000년 시즌엔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001년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껏 한국 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투수일까? 이미 야구팬들 사이에선 이에 대한 논쟁이 몇 차례 진행됐었고, 지금도 인터넷에선 심심치 않게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박찬호가 최고냐, 아니면 선동열, 최동원이 최고냐? 결론부터 말하면 팬들은 박찬호, 야구인들은 선동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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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지난 5월 실시한 한국이 낳은 최고 투수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박찬호가 57%의 표를 얻어 39%에 그친 선동열을 눌렀다. 최동원은 불과 3% 득표에 그쳤다. 네티즌들이 박찬호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최고의 리그’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그 ‘최고의 리그’에서 박찬호는 비록 한때이긴 하지만 내셔널리그에서 랭킹 2, 3위의 투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팬들이 지금도 최고의 선수로 꼽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 ‘빅유닛’ 랜디 존슨과 견줄 수 있는 투수였다. 2000년과 2001년 2년간 피안타율은 0.215로 랜디 존슨에 이어 내셔널리그 2위며, 2년간 평균자책점은 4위(3.31)였다.

선동열의 기록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박찬호, 저리 가라”다. 85년부터 95년까지 10시즌 반(85년은 후반기에만 활약) 동안 146승40패132세이브, 평균자책 1.20을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겨우 0.172였고, 투수를 평가하는 실질적인 기준인 WHIP(이닝당 안타나 4사구로 주자를 내보내는 수치)는 0.833이었다. 반면 박찬호의 WHIP는 한창 전성기였던 2000년과 2001시즌만 따져도 1.310이다.

그러나 선동열의 기록은 네티즌들 용어로 ‘허접한’ 타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런 기록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없다. 바로 박찬호 우위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야구인들, 곧 야구선수를 했던 사람들의 의견은 다르다. 선동열이 박찬호의 나이에 미국에 건너갔다면, 그래서 마이너리그의 체계적인 수업을 거쳤다면 박찬호 이상의 성적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선동열은 한국에서 활약하던 그 모습 그대로 메이저리그에 옮겨 놓아도 10승은 했을 투수”라고 말한다. 그는 “투수란 볼 스피드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 제구력, 주자 견제 능력, 경기 운영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박찬호는 선동열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SBS 박노준 해설위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선동열 선배, 최동원 선배의 공을 모두 상대해 봤는데 정말 치기 어려운 공을 갖고 있었다. 선동열 감독의 빠른 볼은 매우 묵직한 느낌을 주고 슬라이더도 예리하다. 최동원 선배의 낙차 큰 커브는 25년전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했을 것이다. 박찬호의 볼은 바로 옆에서 본 적이 있는데 대단한 강속구였다. 빠르게 휘어나가는 커브도 위력적이다. 그러나 역시 제구력이 문제다. 셋 중 최고를 뽑는다면 선동열 감독을 선택하고 싶다.”

좀 더 나이 든 야구인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최동원과 선동열이 박찬호보다 뛰어난 투수들이었다고 말한다.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어우홍 감독은 “파이팅 때문에” 최동원을 최고의 투수라고 생각한다.

어 감독은 “박찬호를 대단한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뛰었다면 그런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어 감독이 생각하는 최고 투수의 조건은 정신력. “최동원은 70년대 말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80년대 프로에 들어와서도 팀이 어려울 때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를 보여줬다. 선동열도 국가를 위해 활약했지만 최동원보다는 못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최동원을 최고 투수로 꼽고 싶다.”

롯데 강병철 감독도 “최동원과 선동열이 박찬호보다 뛰어난 투수들이며, 팀을 위해 연투(連投)도 마다지 않은 최동원이 승부사적 기질에서 선동열보다 낫다”고 했다.

90년대 중반 박찬호의 미국 진출 이후 등장한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의견이 엇갈린다. Xports 해설위원인 송재우 씨는 선동열을 선택했다. 그는 선동열이 메이저리그에서 가서도 성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단 짧은 손가락 때문에 상하로 변하는 변화구를 던지기 어려웠던 선동열의 단점을 생각하면 선발투수보다는 마무리 쪽이 적합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역시 메이저리그 해설가인 이종률 씨는 박찬호의 손을 들어줬다. 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와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메이저리그는 엄청난 실력차이가 있으며, 거기서 리그 2, 3위 급 활약을 펼쳤던 박찬호가 더 뛰어난 투수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99년 선동열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를 센트럴리그 정상으로 이끈 뒤 고민 끝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미국 여행 중 박찬호와 만났다. 당시 박찬호는 선동열이 보스턴 레드삭스의 입단 제의를 거절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던져도 40세이브는 가능할 것”이라면서. 선동열 역시 “그때 메이저리그에 갔으면 사사키 가즈히로(당시 시애틀 매리너스) 만큼의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선동열의 라이벌이었던 사사키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119세이브를 올리며 시애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박찬호나 선동열이나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들이다. 드러내 놓고 으스대지는 않지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113승 투수’를, 선동열은 ‘꿈의 0점대 방어율’을 자랑한다. 과거 박찬호는 선동열 감독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라는 표현을 많이 했다. 선 감독은 전성기 때의 박찬호를 “아주 대단한 후배 투수고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라고 높이 평가했었다. 하지만 그건 공식적인 코멘트다. 그들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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